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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소리에서 목소리로 > 퍼포먼스

퍼포먼스(가변설치)_녹음된 데이터베이스로부터 변환된 4중창 사운드_2022

2022.09.16

개인전

2022《 목소리에서 목소리로 》, Art Space 128, 대전 / 2022 차세대artistar지원사업 1년차, 대전문화재단 지원

《 목소리에서 목소리로 》Art Space 128

작가 · 기획

김채원

음악 감독 · 편곡
송화목

영상 감독

이정주

평론

김상호

남성 4중창

Tenor

이혜성

High baritone

강주은

Low baritone

최해성 

Bass

송화목

평론

전자변형시대의 예술

시뮬라크르는 퇴락한 복사물이 아니다. 그것은 원본과 복사본, 모델과 재생산을 동시에 부정하는 긍정적 잠재력을 숨기고 있다.

- 질 들뢰즈 『플라톤과 시뮬라크르』 중

작가 김채원은 소리, 말, 언어를 시청각적 감각으로 변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전북에 위치한 한 교회의 예배시간에 일어나는 상황을 2년간 주 1회 녹음해 그 시간 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소리를 채집했다. 녹음 원본에는 음악, 음성, 소음 등 갖가지 소리가 담겨있다. 경건한 기도, 설교뿐만 아니라 공동체 일원들 간의 갈등, 반목, 다툼도 대화 형식으로 담겨있다. 이 녹음은 신앙 공동체에서 벌어진 부도덕한 사건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 충격을 반영하고 있지만 그 도덕적 의미를 넘어서서 작가의 예술적 세계관의 핵심을 이루는 중요한 창작 레퍼런스로 기능하고 있다. 

2018~2020년 사이 작가는 두 번의 개인전을 통해 이 녹음 자료를 사운드,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형식으로 변환하여 선보였다. 특수 프로그램을 통해 녹음 속에 담긴 말과 소리를 악보로 변환해 피아노로 연주하거나, 테이프를 거꾸로 돌려 괴이한 사운드를 만들어 내거나 또는 들리는 대화 그대로를 타자기로 치는 퍼포먼스를 하는 등 형식을 다채롭게 바꾸어가며 원 자료 속의 말과 소리를 변형시켰다. 그 과정 속에서 원 녹음 속의 내용들은 지워지고 새로운 소리들이 그 자리를 채우며 예술작품을 구성했다.      

2022년 김채원의 개인전에 선보인 <목소리에서 목소리로> 역시 이전과 마찬가지로 교회에서 녹음된 동일 데이터를 활용한 작품이다. 원 녹음 속 음성을 4성부 악보로 변환하고 이를 아카펠라 중창단이 퍼포먼스로 재현했다. 기존 작품에서 작가는 사람들의 말을 악보 & 사운드의 기호로 바꾸었지만, <목소리에서 목소리로>에서는 노래하는 음성이라는 신체성을 입혀 소리를 시청각적으로 더욱 구체화했다. 게다가 기존 작품에서는 녹음 속 교회 에피소드의 내용이 형식의 변환과정 속에서 지워졌지만, <목소리에서 목소리로>에서는 교회라는 지표(index)를 지우지 않고 그 무드를 전시장 속에 재현했다. 교회에서 벌어진 부정한 사건들은 음악으로 변환되었고, 갈등과 반복의 대화는 중창단의 노래로 바뀌었다.  

순백의 전시장에서 흰 가운을 입은 중창단이 부르는 음악은 원 녹음 속의 말과 소리를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악보로 변환한 후 연주한 노래이다. 음악으로 형식이 바뀌었지만 녹음 속 대화의 고저, 강약, 억양, 장단을 어슴푸레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중창단의 노래는 끊김, 이어짐, 불협화음, 이상한 선율로 이루어진 대화 즉, 오페라의 레치타티보처럼 들리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닮은 음악처럼 들리기도 한다. 우렁차고 조화롭지만 불편하고 기이한 선율은 관람객들을 모순의 당혹감 속으로 밀어 넣는다. 교회의 부정한 사건에 주목한 원 녹음을 정갈한 공간 속 투명한 성가로 변형한 작가의 시도는 아이러니를 넘어선다. 부도덕함과 조화로운 음악. 이 모순적 상황이 한 작품 속에 공존한다. 

김채원의 작업이 갖는 핵심은 원형의 형식이 변형되는 과정에 있다. 데이터는 작가의 손을 떠나 불확정적 상황 속에서 모습을 바꾼다. 원 녹음의 모습이 변형되어 가는 과정 속에는 우연의 요소들이 개입한다. 그 결과물은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원본의 흔적을 간직한 채 시뮬라크르처럼 복제되고 변형되며, 정체성을 지우지만 또 미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녹음 속의 대화가 퍼포먼스를 통해 전시장에서 시청각화 될 때 그 퍼포먼스의 형식은 녹음 속 대화의 형식을 반영한다. 예배시간에 벌어진 말의 고저와 강약, 지속과 분절은 아카펠라 노래 속에 음량, 음절의 변화로 그 희미한 잔영을 남긴다. 결과적으로 노래는 사람들의 대화 형식에 따라 재현되며 녹음 속 교회 공간을 채우던 말은 이제 전시장을 채우는 노래가 된다. 교회와 전시장. 두 개의 상이한 공간은 이렇게 서로 닮은 듯 김채원의 작품 속에서 오버랩된다. 형식적인 측면에 이어 살펴볼 것은 윤리적 측면이다. 오버랩된 공간 속에서 작가는 원 녹음에 담긴 신앙의 도덕적 문제를 참여자들과 함께 되새김질 한다. 작가는 전시장에 방문한 관객들에게 <목소리에서 목소리로>의 노래를 가르치기도 하고 악보를 기보해 보며 창작의 과정과 의미를 함께 나눈다. 이런 참여적 워크숍을 통해 교회를 닮은 전시장은 작가의 문제의식이 반복적으로 맴도는 공간이자, 타인과 생각을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인간의 말은 옳고 그름을 밝히는 로고스였다. 프로이드에게 말과 언어는 무의식을 드러내는 징표이자 상처를 치유하는 도구였다. 그럼 김채원의 녹음 속에 담간 말과 언어는 무엇일까? 왜 이 녹음 자료는 작가의 여러 작품 속에서 얼굴을 달리하며 반복적으로 등장할까? 그것은 부도덕을 암시하는 동시에 대항하는 언어이다. 무의식을 숨기는 동시에 드러내는 소리이다. 녹음 데이터를 반복적으로 다루는 수행적 행위 속에서 작가는 부정의 언어를 지워내고 로고스의 음성, 긍정의 음악을 재생산했다. 다투고 반목하는 음성은 중창단의 조화로운 음성으로 치환된다. 그 두 개의 음성은 서로 대립하지만 또 연결되며 전자변형시대에 가능한 양식으로 예술을 창조한다. <목소리에서 목소리로>는 말에서 노래로, 부정에서 긍정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예술이 된다.

 글/김상호(이응노미술관 학예사)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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